AI를 사용하면서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자료를 찾아주고, 복잡한 내용을 정리해 주고, 문장까지 자연스럽게 다듬어 준다.
예전 같으면 몇 시간 동안 사람이 검색하고 고민했을 일을 몇 분만에 끝낼 수도 있다.
분명 편리하다.
그런데 AI가 만들어 준 결과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글은 잘 정리되어 있는데, 나는 얼마나 생각한 걸까?"
AI가 생각을 대신하기 시작한다면
AI를 사용하면 자료를 찾고 비교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도 쉽게 설명해주고,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관점까지 제시한다.
허나, AI의 답변이 그럴듯하다는 이유만으로 내용을 그대로 받으들이면, 내가 직접 근거를 살피고 판단하는 과정이 사라질 수 있다. 질문은 내가 했지만 결론은 AI가 내리고, 나는 그 결론을 확인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 서로 다른 주장을 비교하는 일, 반복되는 표현을 고치는 일은 AI가 훨씬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이런 부분까지 굳이 혼자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다만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정하고, 어떤 근거를 믿을 것인지 판단하고, 최종적으로 어떤 관점을 선택할 것인지는 여전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AI와 인간의 역할을 나누어 보기로 했다
앞으로 AI를 사용할 때는 서로의 역할을 조금 더 분명하게 나누어 보려고 한다.
AI에게는 이런 일을 맡긴다.
- 필요한 자료를 찾는다.
- 여러 정보를 비교한다.
- 복잡한 내용을 정리한다.
- 내가 놓친 관점과 반론을 제시한다.
- 글의 구조와 표현을 다듬는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일을 맡는다.
- 무엇을 알아볼 것인지 질문을 정한다.
- 자료와 출처를 확인한다.
- 사실과 해석을 구분한다.
- 어떤 관점을 선택할지 판단한다.
- 글에 담긴 생각과 결론에 책임을 진다.
AI는 답을 대신 내려주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더 잘 생각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질문을 던지는 파트너에 가까워야 한다.
사실과 생각을 구분하는 연습
우리는 생각보다 사실과 의견을 자주 섞어서 말한다.
어떤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은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순간부터는 추론이 들억나다.
그것을 좋거나 나쁘다고 평가하는 것은 개인의 가치 판단에 가깝다.
이 세 가지가 섞이면 그럴듯한 문장도 쉽게 단정적인 주장이 된다.
그래서 앞으로 글을 쓸 때는 스스로 확인해 보려고 한다.
- 이것은 확인된 사실인가?
- 사실을 바탕으로 한 추론인가?
- 나의 경험과 가치관이 들어간 의견인가?
- 반대 입장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는가?
- 아직 확인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가?
정답보단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완성된 글보다 다듬어지는 과정
정각재는 목재를 반듯하게 다음어 가구의 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부재를 말한다.
거친 목재가 바로 가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르고, 깎고, 치수를 맞추는 과정을 반복해야 비로소 흔들림 없는 구조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생각도 비슷한 것 같다.
처음 떠오른 생각은 대체로 거칠고 빈틈이 많다. 내가 맞다고 믿었던 주장에도 근거가 부족할 수 있고, 익숙하게 사용하던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료를 찾아보고, 다른 관점을 만나고, 반론을 검토하면서 생각은 조금씩 형태를 갖춘다. 문장으로 기록하는 과정에서도 보이지 않던 빈틈도 발견될 수 있다.
AI는 이 다듬질을 도와주는 좋은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고, 어느 정도까지 판단하는 사람은 결국 주도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AI의 능력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도 중요하지만 나의 가치관과 사고의 무게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정각재에 쌓아가고 싶은 것
앞으로 이곳에는 완벽하게 정리된 지식을 올리기 보단,
건축과 조경, 나무와 식물, 경제와 생활, AI를 사용하며 알게 된 것처럼 서로 달라보이는 이야기들을 기록할 것이다.
한 가지 과정은 꼭 지키려고 한다.
궁금한 것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자료를 찾아보고,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가능한 나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는 것이다.
AI가 빠르게 답을 만들어주는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콘텐츠를 자동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AI에게 생각을 맡기는 시스템이 아니라, AI를 이용해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정각재에 쌓이는 글들은 그 과정에서 하나씩 다듬어진 작은 부재가 될 것이다.
아직 무엇을 완성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하나씩 바르게 다듬어 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생각과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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