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부

스웨덴은 투 트랙, 한국은 양극화

정각재 2026. 9. 19.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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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뉴스(26.9.18.)

 

인구 약 1,060만 명의 스웨덴은 유럽에서 인구당 유니콘 기업을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볼보·이케아·에릭슨 같은 기존 기업이 경제의 기반을 지키는 가운데, 스포티파이·클라르나와 최근의 레고라·Lovable 등 테크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성공한 기업 하나가 탄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1세대 테크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가 다시 창업하고, 기업공개와 매각으로 자본을 확보한 창업자가 다음 기업의 투자자로 참여한다. 인재·자본·기술이 다음 창업을 밀어주는 플라이휠 생태계다.

 

반면 한국은 이공계 인재가 의약학 계열로 이동하고, 대학과 일자리도 수도권에 집중되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반도체·조선·배터리 등 세계적인 제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여기서 축적된 인재와 자본이 새로운 세계시장형 IT 기업으로 충분히 순환하고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레고라는 어떤 기업?

 

레고라는 202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설립된 법률 업무용 AI 기업이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챗봇이 아니라 변호사의 문서검토, 법률조사, 계약 조항 비교, 실사와 초안 작성을 지원하는 협업 플랫폼을 만든다.

 

법률 분야에서는 그럴듯한 문장을 만드는 것보다 답변의 근거를 제시하고 고객의 비밀정보를 보호하며 기존 로펌의 업무체계와 연결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레고라는 범용 AI를 그대로 판매하는 대신 법률이라는 특정 산업의 업무 흐름을 제품으로 만들었다.

 

성장 속도도 빠르다. 회사 발표 기준으로 레고라는 2026년 3월 5억5,000만 달러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 55억5,000만 달러를 인정받았다. 당시 50여 개 시장에서 800개가 넘는 로펌과 기업 법무조직이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었다.

 

중요한 점은 스웨덴에서 창업했지만 스웨덴 법률시장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톡홀름에서 기술을 개발하면서 런던·뉴욕·시드니·벵갈루루 등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처음부터 세계의 대형 로펌을 고객으로 삼았다.

 

 

스웨덴에서 등장한 또 다른 신생기업

 

스웨덴의 최근 스타트업은 소비자용 서비스뿐 아니라 특정 산업의 업무를 바꾸는 기업용 AI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Lovable은 자연어로 원하는 기능을 설명하면 웹사이트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주는 AI 개발 플랫폼이다. 2024년 11월 출시된 뒤 빠르게 성장해 2026년 8월 4억 달러를 유치했고 기업가치 133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회사 발표에 따르면 플랫폼에서 만들어진 프로젝트는 6,000만 개를 넘어섰다.

 

Tandem Health는 의료진과 환자의 대화를 정리해 진료기록을 작성하고 행정업무를 줄이는 의료 AI 기업이다. 2026년 9월 유럽 의료시장 확대를 위해 1억 달러를 유치했다. 의료 규제와 개인정보 보호를 충족해야 하므로 범용 AI와는 다른 산업 지식과 진입장벽이 필요하다

 

Einride는 전기트럭과 자율주행, 물류관리 소프트웨어를 결합한다. 스웨덴이 보유한 자동차·통신·제조업 기반이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업과 연결된 사례다.

 

 

스웨덴의 투 트랙

 

스웨덴의 투 트랙을 볼보·이케아·에릭슨과 스포티파이·레고라가 나란히 존재하는 구조로만 설명하면 부족하다.

기존 제조·통신·유통 기업은 고용과 수출, 공학 인재와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한다. 스포티파이·클라르나·킹·스카이프 같은 1세대 테크기업은 글로벌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성장한 인재와 투자자가 다음 창업으로 이동한다.

 

Business Sweden은 Spotify, Klarna, King, iZettle와 Trustly 등에서 일한 인재들이 새로운 창업자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정부기관과 산업기관이 참여한 2025년 보고서에서는 스웨덴을 유럽 인구당 유니콘 1위 국가로 평가했다. 세계 순위는 조사기관과 집계 기준에 따라 달라지므로 ‘세계 1위’보다 ‘세계 최상위권이자 유럽 1위’로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다. 

 

인구가 적다는 점도 역설적으로 작용했다. 내수시장만으로 크게 성장하기 어려우므로 창업 초기부터 영어와 클라우드를 이용해 세계시장을 목표로 해야 했다.물론 모든 기업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의 위기는 대규모 투자와 정책지원이 생산능력과 현금흐름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스웨덴 AI 기업들도 스톡옵션 과세와 글로벌 인재 유치 제도가 미국·영국보다 불리하다고 지적한다.

 

스웨덴의 강점은 실패가 없다는 데 있지 않다.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 인재가 생태계 밖으로 사라지지 않고 다시 창업·투자·대기업으로 이동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어떤가?

 

쿠팡과 컬리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사업의 기반은 국내 소비자와 물류망이다. 한국의 높은 인구밀도, 새벽배송, 전국 물류센터, 국내 유통규제와 소비습관이 경쟁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구조는 국내에서 강력한 진입장벽을 만들지만 해외에 그대로 복제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국가에 진출할 때마다 물류센터와 판매자, 배송인력과 규제 대응체계를 다시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레고라 같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는 현지 법률자료와 보안 요건을 맞춰야 하지만 국가마다 물류센터를 건설할 필요는 없다. 고객 한 곳이 늘어날 때 추가되는 비용도 상대적으로 낮다.

 

쿠팡과 컬리의 가치가 낮다는 의미가 아니다. 국내 물류 기반 플랫폼과 세계시장형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확장 방식이 다른 산업이다. 한국에서 글로벌 IT 기업을 찾으려면 내수 플랫폼만이 아니라 반도체·제조업용 AI·로봇·의료 AI와 기업용 소프트웨어까지 함께 봐야 한다.

 

 

퓨리오사AI는 2017년 서울에서 설립된 팹리스 AI 반도체 기업이다. 반도체 공장을 직접 운영하지 않고 데이터센터에서 대규모 언어모델을 실행하는 추론용 AI 가속기와 소프트웨어를 설계한다.

핵심 제품 RNGD는 GPU를 그대로 모방하기보다 자체 텐서 연산 구조를 이용해 추론의 전력 사용량과 서버 비용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회사는 2025년 1억2,500만 달러를 추가 유치해 누적 투자액 2억4,600만 달러를 확보했고, 2026년 RNGD 양산과 상용 공급을 시작했다. 삼성SDS는 RNGD 기반 NPU 클라우드 서비스를 발표했고 LG AI연구원은 EXAONE 모델을 RNGD에서 운용하고 있다. 

 

이 회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한국의 기존 산업과 신생 기술기업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삼성 파운드리는 1세대 칩을 생산했고, SK하이닉스는 RNGD에 HBM3를 공급한다. LG는 초기 고객, 삼성SDS는 클라우드 서비스 역할을 맡는다. 2세대 칩은 TSMC에서 생산한다.

 

이 구조는 한국 기업도 글로벌 공급망 없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공급망에 참여한다는 것과 종속된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모든 공정을 국내에 두는 것보다 설계·소프트웨어·고객 관계처럼 대체하기 어려운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퓨리오사AI가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시험 공급을 넘어 반복적인 대규모 매출을 만들고, 다양한 AI 모델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하며, 해외 클라우드에서 실제 사용량을 확보해야 한다. 기술 검증 이후 시장 검증이 남아 있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성공의 재활용?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세계적인 기술과 사업 경험을 쌓은 인재가 많다. 하지만 이들이 창업하거나 신생기업으로 이동하고, 성공한 창업자가 다시 다음 기업에 투자하는 순환은 아직 충분히 크지 않다.

 

한국형 플라이휠을 만들려면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경쟁자가 아니라 초기 고객과 실증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대학 연구가 논문에 머물지 않고 창업팀과 제품으로 이어져야 하며, 실패한 창업자의 경험도 경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스톡옵션과 인수·합병을 통해 확보한 자본이 다시 초기기업으로 이동하는 구조도 필요하다.

 

정부 지원 역시 창업기업의 수를 늘리는 데서 그치기보다 해외 고객과 반복 매출을 확보하는 기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의 투 트랙은 전통 제조업과 신생 AI 산업이 단순히 함께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다. 기존 기업과 1세대 스타트업이 만든 인재·자본·기술이 다음 산업으로 이동한다는 데 핵심이 있다.

 

한국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보유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들 기업에서 축적된 인재와 공급망, 고객과 자본이 퓨리오사AI 같은 신생기업으로 흐르고, 그 성공이 다시 다음 창업으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산업의 교체가 아니라 성공의 재활용이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IT 기업이 나올 수 있느냐는 질문의 답은 새로운 천재 한 명을 찾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축적된 제조업의 성공을 다음 기업이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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